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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나의 삶은 갈치김치와 함께 여물어간다

  • 작성자세계김치연구소
  • 작성일시2023.04.11 11:11
  • 분류2022
  • 조회수400

김장을 했다. 담가놓은 갈치김치가 시나브로 영롱한 빛으로 물들며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깊은 맛을 내려고 서로를 살갑게 품은 갈치김치를 보자 시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먼 옛날, 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김장을 할 때였다. 당시 시댁에는 김장을 담그기 위해 모든 시댁 식구들이 모여 들었다. 이른 나이에 시집을 와 제대로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었던 나는 시부모님에게 눈총을 받진 않을까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실수만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부엌에 들어섰는데 웬 팔뚝만한 생갈치가 여러 마리 준비돼 있었다. 김장이 끝난 후 갈치찌개를 끓일 건가보다고 생각했는데, 갈치김치가 귀한 손님상에만 올리던 음식이라는 소리를 듣고 김장김치에 넣을 갈치라는 걸 알게 됐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다가 늘그막에 도시로 올라오신 시부모님은 고향 입맛을 잊지 못해 매해 갈치김치를 담그셨던 것이다.

김치소를 준비하던 시어머님과 형님을 대신해 내가 갈치 손질을 담당하게 되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매는 나를 보고 마치 갈치들이 놀리듯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갈치 손질에 애를 먹는 내 모습에 시어머님이 보다 못해 대신 갈치를 손질하고 토막을 내셨다.

새댁인 내 눈에는 김치와 갈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합으로 보였다.

김치에 갈치를 넣으면 비린내가 안나나요?”

형님한테 슬쩍 물어봤더니, 갈치 비린내가 나기는커녕 갈치김치 특유의 시원함과 감칠맛이 깊어진다고 귀띔해 주었다. 본인도 서울토박이라서 몇 년간은 손도 대지 못했는데, 지금은 생각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 정도로 입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시어머님은 대충 눈대중으로 계량을 하는데도 적당한 염도로 맛을 딱 잡아내셨다. 시어머님의 통솔 하에 형님과 나는 팔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속재료를 양념에 버무렸다.

나를 당황스럽게 했던 갈치는 김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주인공이었다. 양념을 묻힌 배추 사이사이에 보물 다루듯 갈치를 켜켜이 넣고 김치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김치 담그는데 서툴러 배춧잎 하나하나에 양념과 갈치를 넣느라 쩔쩔매는데도, 시어머님은 나를 보며 제법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시어머님은 어린 나이에 친정엄마를 여읜 나를 마치 친딸처럼 보듬어주셨던 것이다.

한 달 후 시댁에 들렀더니, 시어머님이 갓 시집 온 나를 위해 갈치가 푸짐하게 올라간 김치를 상 위에 올려주셨다. 귀한 음식이니 귀한 며느리가 먹어야 한다며 내 쪽으로 옮겨주셨다. 갈치는 당연히 털어내고 김치만 먹는 것인 줄 알았는데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손도 데지 못하고 있는 나와 달리, 가족들은 양념 속에 푹 절은 갈치부터 골라먹기 바빴다. 나도 최대한 거부감을 누르고 김치에 갈치를 싸서 먹었다. 내가 갈치김치에 맛을 들이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첫 아이를 임신한 후 입덧을 심하게 했던 나는 먹는 족족 토해내기 바빴다. 문득 어렸을 적 먹었던 친정엄마의 음식이 그리워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김치였다. 친정엄마가 담근 김치를 먹으면 울렁거리는 속이 개운해 질 것 같았지만, 그저 마음 속 바람일 뿐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었다.

시어머님과 남편이 챙겨준 갖가지 음식들을 눈앞에 놓고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뱃속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먹으라는 말에 음식을 넘기면 어김없이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지나친 입덧과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지쳐가던 어느 날이었다. 시어머님과 형님 내외가 우리집에 오셨다. 시어머님 손에는 새우젓과 고춧가루가, 형님 내외의 손에는 배추와 무가 들려 있었다.

알고 보니, 내 고향에서 난 새우젓과 배추, 고춧가루를 공수해 오신 것이다. 그리곤 내가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갈치가 들어 있지 않은, 과거 친정엄마가 담가주던 방식으로 김치를 담가 주셨다. 친정엄마가 없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친정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옛날 친정엄마가 담가준 것과 완전히 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시어머님의 김치는 신기하게도 내 입맛에 딱 맞았다. 시어머님이 담가준 김치를 밥상 위에 올려놓으니 그때부터 입덧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 시절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시어머님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시어머님은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김치를 담가주셨다. 열무김치에 무생채, 오이김치까지 어느 것 하나 맛이 없는 김치가 없었다. 김치 속에는 시어머님의 온전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유독 막내며느리 사랑이 각별하셨던 시어머님이었는데, 정작 나는 며느리로서 효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만큼 시어머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형편 또한 넉넉지 않아 무엇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게 없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날, 마음을 표현하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어찌 보면 효도라는 게 거창한 일이 아닐 텐데, 얼굴 한 번 더 보여드리지 못하고 전화로 목소리 한 번 더 들려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후회로 남는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지도 벌써 2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김장을 할 때면 늘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나 코끝이 시큰해진다. 며느리들과 둘러앉아 갈치김치를 만드는 내 모습 속에서 그 옛날 시어머님의 모습이 투영돼 그리움을 더한다. 시어머님께 전수받은 갈치김치 덕분에 내 삶도 김치와 함께 잘 여물어가고 있다



작품소개

처음 시집을 와 김장을 하는데, 시댁의 김장김치에 갈치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 후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님은 갈치가 푸짐하게 올라간 김치를 한 상 내어주셨고, 귀한 음식이니 귀한 며느리가 먹어야 한다며 내 쪽으로 옮겨주셨다. 갈치김치는 시어머님의 깊은 사랑이었다


글쓴이

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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